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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수작업 ‘스프링뱅크’ 위스키… 사랑에 빠질 수밖에

스코틀랜드의 서부 킨타이어반도의 끝에 있는 스프링뱅크의 100% 수작업으로만 만든다는 위스키

동아일보

글래스고에서 캠블튼으로 타고 간 경비행기.

《오래전부터 꿈꾸던 곳이 있다. 스코틀랜드 증류소를 단 한 곳 방문할 수 있다면 꼭 가고 싶었던 곳은 바로 스코틀랜드의 서부 킨타이어반도의 끝에 있는 스프링뱅크다. 100% 수작업으로만 만든다는 위스키로 아마 위스키에 관심 있는 이들은 한번은 들어봤을 증류소다. 얼마 전 이곳을 향해 세상에서 가장 작은 프로펠러 여객기를 타고 떠났다. 10명도 채 타지 않는 작은 비행기라 1인당 수화물은 15㎏까지만 허용됐다. 당연히 23㎏으로 생각한 수화물 무게를 다시 맞추기 위해 출발 직전에 부랴부랴 짐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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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뱅크가 있는 킨타이어반도의 캠블튼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또 다른 위스키로 유명한 두 곳, 아일라섬 남부의 포트엘렌과 북아일랜드의 부시밀즈와 정삼각형을 유지한다. 스프링뱅크가 위스키를 100% 수작업으로 만든다는 의미는 몰팅, 즉 엿기름을 만드는 작업을 사람의 손으로만 하는 유일한 증류소란 뜻이다. 증류 횟수 또한 2.5회란 알쏭달쏭한 횟수로 유명하다. 1차 증류한 원액을 2차 증류기로 다 보내지 않고 80%만 보내고, 3차 증류할 때 남은 20%와 2차 증류의 결과물을 섞어 증류하기에 2.5회 증류라 표현하지만 엄밀히 계산하면 2.2회 증류라 할 수 있다. 즉 스코틀랜드의 2회 증류, 아일랜드의 3회 증류를 절충한 방식으로 양쪽 모두의 영향을 받아 균형감 있는 위스키를 생산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세 지역 모두 위스키로는 큰소리를 낼 수 있는 곳으로 가까운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영향을 받아왔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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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뱅크의 증류기. 박병진 칼럼니스트 제공

이런 증류 횟수의 차이보다 위스키에 대한 애정 어린 그들의 진심이 위스키의 맛과 완성도에 더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이곳은 100여 년 전, 위스키의 수도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번성했지만 금주법과 대공황으로 몰락한 역사가 있고 또 새로운 반전이 있다. 이런 이유로 스코틀랜드의 작은 반도 끄트머리에서 나오는 위스키는 컬트가 됐고, 신화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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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뱅크 증류소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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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진 칼럼니스트

전 세계의 수많은 위스키 애호가가 추종하는 스카치위스키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팬덤을 가지고 있는 곳이 바로 스프링뱅크다. 3일간 캠블튼에 머무르며 스프링뱅크를 요모조모 둘러보며 이곳의 테루아와 이를 만드는 사람들, 엷은 피트 향이 느껴지는 공기 속에서 어렴풋이 그 비밀을 알 것도 같았다. 요즘의 다른 증류소들은 각기 증류소를 대표하는 유명한 마스터 디스틸러가 있다. 물론 과거에 스프링뱅크에도 그런 이가 있었으나 언젠가부터 이곳은 그런 슈퍼스타가 사라졌다. 그저 묵묵히 전통적인 생산 방식으로 위스키를 만들어내는 팀 스프링뱅크가 있을 뿐이다. 직원들 하나하나가 스스로 자신의 일을 찾아서 한다. 증류소의 말단 직원까지 모두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이 넘친다. 굳이 누군가를 스타로 내세우지 않더라도 즐겁게 일하는 이들을 보면서 나도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100% 핸드메이드 스프링뱅크라는 그들만의 자부심 DNA가 슈퍼스타 없이도 최고의 위스키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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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사용량 모니터링 흑판.

증류소 투어 과정에서도 여느 증류소와 사뭇 다른 감동을 느꼈다. 생산 과정을 둘러보는 것 자체는 다른 증류소와 비슷했지만 설명 하나하나에 자부심이 넘쳐흘렀다. 그들의 최첨단 생산관리 시스템은 그저 온습도계를 눈으로 보며 20세기 초의 핸들과 레버로 조작하는 것이었다. 이따금씩 흑판에다 분필로 생산량과 투입 재료의 증감을 무심한 듯 기록했다. 흑판이 없는 곳은 거뭇거뭇 곰팡이가 낀 벽면에 그냥 쓱 숫자를 썼다. 투입될 보리의 양을 측정하는 미터기를 보니 그저 기다란 막대기에 눈금을 그어놓고 한 번 쓱 담갔다 꺼내서 흘끗 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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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프로 땜질한 몰트 이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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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트를 훈연하기 위한 화구. 피트 아래에 접은 신문지가 깔려 있고 그 앞에 라이터가 보인다.

다른 증류소에서 본 것과는 확연히 다른 점을 두 가지 발견했다. 바로 몰트의 건조와 이송공정이었다. 적어도 10년은 청소를 안 한 듯, 무거워서 축 처질 정도로 거미줄이 잔뜩 낀 천장과 낡은 설비는 이제 놀랍지 않다. 몰트를 건조하기 위해 아래쪽 화구에서 불을 피워야 하는데 수분이 많고 탄소 함량이 낮은 피트는 불을 붙이기 상당히 어렵다. 다른 증류소들은 상당히 강력한 점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는데 스프링뱅크의 최첨단 점화 시스템은 정말 쿨내가 풀풀 날 정도로 멋졌다. 쌓인 피트 아래 꼬깃꼬깃 접은 신문지와 일회용 라이터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한 병에 수십, 수백만 원부터 시작하는 최고가 위스키의 제조 공정에 신문지와 라이터라니… 거기에다 몰트의 이송관 또한 오래돼 많이 망가져 있었는데 곳곳에 최첨단 유지보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 바로 스카치테이프로 둘둘 감아 완벽한(?) 마무리를 해둔 것이다. 센스 있게도 시중의 일반 스카치테이프가 아니라 스프링뱅크의 로고가 멋지게 박힌 반투명 테이프가 공정 요소요소에 잘 배치돼 유지보수에 대한 진심을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은 내가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으며 그거 찍어서 뭐 하려고 하냐며 그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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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업으로 몰트를 만드는 직원.

이 모든 제조 과정을 정말 재미있게 설명해준 가이드 알리는 그 역시도 방문객들이 오지 않는 날에는 증류소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스프링뱅크의 직원이었다. 예외 없이 농담을 잘하는 스코틀랜드인답게 알리 역시 진지한 얼굴로 투어의 시작에 아침 식사라며 헤이즐번 24년 한 잔을 내놓아 모두를 즐겁게 했다. 농담으로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지만 농담이란 조미료가 들어간 일은 과정도 결과도 재미있을 것이다. 농담과 함께 무심한 듯 세상에서 가장 멋진 위스키를 만드는 스프링뱅크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박병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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