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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맛 돋우는 색깔, 소리, 타건감…나의 ‘최애’ 찾아가는 여정

스프링 반발력 ‘기계식 키보드’에

개인 취향 반영 ‘커스텀 키보드’

SNS에서 20~30대에게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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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서울 용산의 키보드 업체 펀키스 타건카페에 진열된 타건용 커스텀 키보드. 상단에는 고객들이 볼 수 있도록 키캡이 끼워져 있지 않아 핵심 부품인 스위치가 드러나 있다.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커스텀 키보드를 쓰면서 달라진 점이요? 정말 일하기 싫은 순간에도 책상에 앉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는 거요.” 인천에 사는 회사원 고은지(32)씨가 말했다. 고씨는 지난해 초 처음 키보드에 관심을 가졌다. “일하는 환경을 바꾸고 기분 전환 삼아 뭔가 바꿀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다가, 예쁜 키보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씨는 유튜브에서 다양한 키보드 영상을 봤지만, 키보드를 직접 ‘연주’해보는 ‘타건’이 필요하단 생각에 용산을 찾았다. 서울 용산역 인근은 다양한 타건숍들이 모여 있어 키보드 마니아들의 성지로 꼽힌다. “처음에는 완제품을 샀다가, ‘뭔가 바꾸면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씨가 ‘하우징’(키보드의 외부 케이스), ‘스위치’(키 축), ‘키캡’(자판의 각 스위치 위 씌운 플라스틱 조각)을 따로 골라 산 뒤 ‘빌드’(조립·구성)해 자신의 입맛대로 키보드를 만들게 된 계기, 즉 ‘커스텀 키보드’를 시작한 배경이다.

2007년 알루미늄 키보드 ‘공제’가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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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서울 용산의 키보드 업체 펀키스 타건카페에 진열된 타건용 커스텀 키보드. (사진 왼쪽) 100여종에 달하는 기계식 키보드의 핵심 부품인 스위치가 진열돼 있어 키압과 누를 때의 소리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커스텀 키보드’는 무엇일까. 먼저 ‘기계식 키보드’를 알아야 한다. 기계식 키보드는 대중적인 멤브레인 키보드와 비교할 때 이해가 쉽다. 멤브레인 키보드는 컴퓨터를 사면 함께 오는 기본형 키보드 또는 일반적인 노트북 키보드다.


멤브레인 키보드는 키캡을 누르면 그 아래에 있는 스위치가 러버돔(반구형 모양의 고무)을 누르고, 이 러버돔이 키보드 본체의 피시비(PCB) 회로기판 접점에 닿음으로 해당 키의 입력 신호가 전달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회로판의 여러 스위치가 직렬 또는 병렬로 연결돼 있다. 그 때문에 동시에 여러 키 입력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타수가 빠를 경우 오타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가격이 저렴하고 키보드 소음이 적은 편이다.


이에 견줘 기계식 키보드는 러버돔 대신 금속 스프링이 들어 있어 각 키를 눌렀을 때 스프링의 반발력으로 다시 원위치 된다. 또 회로판의 스위치가 모두 독립적으로 돼 있어 빠르게 타자를 쳐도 오타가 적다. 흔히 ‘피시방 키보드’라고 하면 떠오르는, 작지 않은 타건 소리가 나고 ‘치는 손맛’이 살아 있는 키보드도 기계식 키보드에 속한다.


1970년대에 처음 개발된 기계식 키보드는 가격이 비싸 소수의 마니아층에서만 향유됐으나, 최근 대중화의 물결에 올랐다. 2014년 기계식 키보드의 핵심 부품인 스위치의 특허권을 보유한 독일 체리사의 저작권이 만료되며 생산 단가가 내려간 게 결정적 계기였다.


이런 기계식 키보드에 개인의 취향을 더한 것이 ‘커스텀 키보드’다. 커스텀 키보드는 ‘주문 제작된’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커스텀’(custom)이 ‘키보드’ 앞에 붙은 용어로, 대량 생산된 기성품에 비해 소비자의 개성을 세세하게 반영한 키보드를 말한다. 커스텀 키보드의 시초는 한국이다.


2007년께 온라인상 키보드 커뮤니티에서 이용자들이 설계한 알루미늄 키보드의 ‘공제’(공동 제작)가 이뤄지며 문화가 시작됐다. 고가의 커스텀 키보드의 경우 100만원을 훌쩍 넘는 것도 많으나, 실사용을 목적으로 하는 커스텀 키보드의 경우 저렴하게는 10만원대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고씨의 경우처럼 각각의 재료를 사서 조립하는 것, 완제품을 사서 스위치나 키캡 등 일부 부품만 교체하는 것, 취향껏 옵션을 설정해 조립된 제품을 받는 것 모두 커스텀 키보드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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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주변 기기 판매업체인 시이닷의 75배열 단청 키캡을 끼운 커스텀 키보드. 키캡 상단에 붓글씨 서체로 한글이 적혀 있고, 영문은 작게 측면에 적혀 있는 등 한국적 특징을 극대화한 키보드. 고은지 제공

기계식·커스텀 키보드에 대한 관심은 20~30대에서 큰데, 최근에는 여성들의 수가 부쩍 늘었다. 용산의 키보드 업체 펀키스 타건카페에서 지난 7월 한달간 방문객 94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방문객 비율은 20대 여성이 35%로 가장 많았고 20대 남성이 26%, 30대 여성과 남성이 각각 11%였다.


펀키스 타건카페 매니저 이승주(37)씨는 “전에는 남자 손님이 대부분이었는데 최근 1년 사이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쇼츠로 예쁘고 소리 좋은 제품을 보고 온 여자 손님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실제로 유튜브와 틱톡에 ‘커스텀 키보드’를 검색하면 타건, 제작, 에이에스엠알(ASMR), 데스크테리어(데스크와 인테리어를 합성한 말로 취향에 맞게 책상을 꾸미는 것) 영상 등을 두루 볼 수 있다.


또 이씨는 “과거 커스텀 키보드를 즐기는 분들은 프라모델처럼 수집, 관상이 목적인 경우가 많았다. 반면 오늘날에는 직접 사용할 목적으로 만드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다”고 했다.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게임 기획자 김상복(40)씨는 직장 동료의 커스텀 키보드를 쳐보고는 그간 느껴보지 못한 타건감에 푹 빠져 그 세계에 직접 뛰어들게 됐다. 그는 유튜브 채널 뽀꾸(PokooKey)를 통해 커스텀 키보드 영상을 올리고 있다. 직접 만든 키보드를 회사에서 일할 때 주기적으로 바꿔가면서 쓴다.


“하우징 소재나 빌드 방법, 그리고 사용하는 부품에 따라 타건감이 전부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 김씨는 직장 동료들의 부탁을 받아 취향에 맞는 키보드를 만들어주며 ‘재능 기부’를 하고 있다.


디자이너 장나연(가명·37)씨는 4년 전 유튜브 영상을 통해 커스텀 키보드를 처음 알았다. “우연히 본 키보드가 너무 예뻐서 찾아보다가, 스위치에 따라 타건감도 달라지는 점 등이 신기해서 빠져들었죠.” 이후 직접 키보드를 만들어 현재 20대 넘게 보유 중이다. 따로 마련한 공간에 키보드를 전시해둔 장씨는 “컴퓨터를 많이 쓰는 직업인 만큼, 그때그때 기분 따라 바꿔가면서 업무용으로 쓰고 있다”고 했다.

‘데스크테리어’의 주요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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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긱 엠파이브’(Monsgeek M5) 풀배열 커스텀 키보드를 만들고 있는 김상복씨. 들고 있는 것은 스위치와 키캡을 조립하기 전의 빈 하우징. 유튜브 채널 ‘뽀꾸’ 갈무리

커스텀 키보드를 만들려면 먼저 몸체에 해당하는 ‘하우징’이 있어야 한다. 보편적으로 쓰이는 하우징 소재는 플라스틱인 에이비에스(ABS)로, 저렴하고 가볍다. 좀 더 깊은 타건음을 낼 수 있는 건 묵직한 알루미늄 소재인데 무겁고 비싼 편이다.


최근에는 피시비 회로기판 납땜이 되어 있는 하우징이 판매되고 있어 수고를 덜 수 있다. 커스텀 키보드가 대중화되지 않은 과거에는 기판 납땜도 직접 해야 했다. 하우징에는 흡음재, 보강판 등을 넣어 타건감과 타건음을 정밀하게 조정할 수도 있다.


다음으로, 선택한 하우징에 호환되는 ‘스위치’가 필요하다. 스위치는 키캡과 하우징 사이를 잇는 기계식 구동체로 ‘커스텀 키보드의 꽃’이라 불린다. 스위치에서 타건감과 타건음이 대부분 결정되기 때문이다. 스위치의 종류는 ‘클릭’, ‘택타일’, ‘리니어’ 세가지로 나뉜다.


먼저 ‘클릭’은 키를 눌렀을 때 ‘철컥’ 소리가 나는 스위치로 경쾌하지만 시끄럽기에 사무실 등 조용한 환경에서는 선호되지 않는 편이다. 체리사의 청축, 카일사의 백축 등이 있다. ‘택타일’은 소음이 덜하면서 누를 때의 구분감은 살아 있는 편으로 체리사의 갈축, 드롭사의 홀리판다가 대표적이다. ‘리니어’는 키를 눌렀을 때 걸림 없이 부드럽게 내려가는 것이 특징으로 ‘도각도각’ 정갈한 소리를 낸다. 체리사의 적축과 흑축 등이 있다. 또 스위치의 스프링을 교체해 키압에 변화를 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스위치를 누르도록 부착되는 ‘키캡’을 고른다. 키캡은 하우징과 함께 외관 디자인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기에 디자인이 중시되며 투명·불투명 플라스틱, 도자기, 자개 등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진다. 배열에 따라 필요한 개수가 다른데 보통 140키 이상의 구성이라면 웬만한 키보드에 호환이 되는 편이다. 키캡 역시 두께와 재질에 따라 타건감에 영향을 준다. 키캡 내부에는 십자형 홈이 있는데, 스위치에 있는 십자형 돌출부에 맞춰 끼우면 된다.


커스텀 키보드의 완성도는 조립 과정의 ‘스태빌’ 맞추기에서 판가름 된다고 마니아들은 입을 모은다. ‘스태빌라이저’는 ‘스페이스 바’나 ‘시프트’ 등 긴 키캡 아래에 들어가는 철심 기구로, 수평을 맞추는 기능을 한다. 스태빌의 수평이 잘 맞으면 키캡 중앙이 아닌 어느 곳을 쳐도 소리가 고르게 난다.


반면 맞지 않은 경우 ‘찰찰’ 하는 쇳소리가 나며 전반적인 완성도가 확 떨어진다. 스태빌을 평평한 판에 올린 뒤 양쪽 끝을 각각 손으로 눌렀을 때 반대편이 들리지 않으면 수평이 맞은 거다. 수평이 맞지 않을 때는 손가락 또는 펜치 등 도구를 사용해 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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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보그 하이75’ 커스텀 키보드의 노브(볼륨·밝기 등을 조절하는 둥근 다이얼) 위에 칫솔에서 잘라낸 하츄핑 미니 피규어를 붙여 꾸민 모습. 고은지 제공

마니아들이 밝힌 커스텀 키보드의 매력을 요약해보면, ‘최애를 찾아가는 끝없는 여정’이다. 장나연씨는 “키캡과 스위치 종류가 천차만별이고 어떻게 빌드하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니 ‘최애 타건감과 타건음’을 찾는 재미가 있다. 처음엔 로(묵직)한 소리를 좋아했는데 요즘은 하이피치(고음)에 끌린다. 키보드를 만들며 변해가는 취향을 보는 것도 매력”이라고 했다.


김상복씨는 “사용 장소와 용도, 취향에 따라 소리와 타건감을 튜닝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매력이며 다양한 배열과 화려하고 독특한 디자인의 키보드를 써볼 수 있는 점도 좋다”고 했다. 커스텀 키보드는 데스크테리어(업무용 책상 꾸미기)의 한 축이 되기도 한다.


유튜브 채널 오엠디(OMD)를 통해 키보드, 마우스 등 ‘워크템’을 소개해온 고은지씨는 “데스크테리어를 제대로 하려면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부터 돈이 많이 드는 편인데 커스텀 키보드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 눈에 확 띄는 변화를 준다. 즉각적이며 ‘가성비’가 좋은 편”이라고 했다.

‘백문이 불여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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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펀키스 타건카페를 찾은 고객들이 진열된 인기 상품 ‘독거미’ 키보드를 타건 중이다.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나만의 키보드는 갖고 싶지만, 처음부터 빌드에 나서기 망설여진다면 ‘가성비’ 기계식 키보드로 입문하는 것도 방법이다. 컴퓨터 부속기기 제조업체 아우라(AULA)의 일명 ‘독거미’라 불리는 에프(F)87프로와 에프99 모델은 4만~7만원대로 가격 부담이 적어 입문용 기계식 키보드로 추천된다.


처음엔 저렴한 기계식 키보드를 사서 키캡이나 스위치만 취향껏 바꾸는 것도 일종의 커스텀이다. 키캡 리무버, 스위치 리무버 등을 사용하면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다. 이승주씨는 “기계식 키보드와 커스텀 키보드의 구분이 그리 뚜렷하지 않은 편”이라고 설명했는데, 과거에는 커스텀을 통해 만들어졌을 법한 품질의 제품이 오늘날에는 완제품으로 출시되고 있으며 선택의 폭도 넓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만의 기계식 키보드를 고르는 기준은 뭘까. 이승주씨는 “‘배열’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가령 일반 사무직 분들에게는 ‘텐키’(키보드 방향키 오른쪽에 숫자키가 있는 부분)가 꼭 필요할 수 있는데, 게임을 주로 하는 경우에는 ‘텐키’가 필요 없을 수 있죠. 키보드가 어떤 색깔이든 소리든 배열이 자신에게 맞아야 오래 편하게 쓸 수 있어요.”


또 키캡, 스위치는 얼마든 교체 가능하지만 배열은 그렇지 않은 점을 고려해야 ‘그림의 떡’을 면할 수 있다. 물론 수집이 목적이라면 배열을 무시해도 된다. 지난달 24일 펀키스 타건카페에서 만난 웹툰작가 최수정(28)씨는 ‘텐키’가 있으면서 ‘자각자각’ 하는 느낌의 기계식 키보드를 찾아 헤매던 끝에 “키보드가 마음에 드는데 재고가 없어서 스위치만 파는 경우도 너무 많다. 이쯤 되면 스위치, 하우징과 키캡을 사서 직접 만들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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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키스 타건카페에 진열된 각종 키보드와 스위치들. 100여종의 기계식·커스텀 키보드와 스위치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키보드계에는 ‘백문이 불여일타’라는 ‘잠언’이 있다. 이날 타건카페에서 만난 웹툰작가 황채연(29)씨는 “키보드 박람회도 많이 다녔는데 영상에서 듣는 것과 직접 쳐보는 소리가 확실히 다르더라. 직접 쳐보고 사는 게 낫겠다 싶어서 방문했다”고 했다.


기계식 키보드 약 100대가 구비된 펀키스 타건카페를 비롯해 용산에는 베스트와이, 구산컴넷, 세모키 등 타건 성지들이 모여 있다. 대부분 완제형 기계식 키보드를 중심으로 타건해볼 수 있는 가운데, 커스텀 키보드가 다수 구비된 곳은 펀키스 타건카페다. 스위치 종류와 키압이 알기 쉽게 명시된 곳을 원한다면 펀키스와 베스트와이를 추천한다.


모든 키보드가 그렇듯, 기계식 키보드도 물에 취약하다. 다만 기계식 키보드는 타건감을 고려해 키 스킨(보호덮개)을 깔지 않는 만큼 액체류가 기판으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크니 더 주의해야 한다. 이씨는 “반년에 한번 정도 키캡을 뽑아 먼지를 닦아주면 좋다”고 했다. 스위치 수명은 5천만~1억타 정도인데, 평균적으로 잘 관리된 수명은 5~10년 정도로 본다.


유해강 허프포스트코리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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