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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만 내 얘기를 들어줘"... 故 김수미의 40여 년 일기 출간

'나는 탄원한다 나를 죽이는 모든 것들을'

법적 분쟁, 공황장애, 방송가 이야기까지

한국일보

10월 27일 오전 서울 성동구 한양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배우 김수미의 발인식이 엄수되고 있다. 뉴스1 제공

"누구라도 좋으니 5분만 내 얘기를 들어줬으면 좋겠어."


지난 10월 25일 갑작스럽게 숨진 배우 김수미(본명 김영옥‧1949~2024)의 일기장에 적혀 있던 구절이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방송에서 종횡무진하며 대중과 소통한 그의 외로움이 묻어 있다. 1983년 그가 30대였던 시절부터 최근까지 40년여간 써온 일기를 묶은 '나는 탄원한다 나를 죽이는 모든 것들을'이 12일 출간됐다.


이날 출판사 '용감한 까치' 등에 따르면 김수미는 생전 "책 출간 후 가족에게 들이닥칠 파장이 두렵다"면서도 "힘들어하는 사람들과 청소년들에게 삶의 철학과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책에는 김수미가 말년에 겪었던 고통이 고스란히 담겼다. 그의 이름을 내걸고 아들이 운영하는 식품회사(나팔꽃 F&B)의 법적 분쟁은 그를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회사의 납품업체가 계약금을 받지 못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회사가 승소했지만, 회사 측은 아들을 대표이사에서 해임하고, 그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김수미는 책을 통해 "나더러 횡령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다"며 "죄를 안 지었습니다. 저 아시죠? 횡령 아닙니다"라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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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탄원한다 나를 죽이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김수미 지음·용감한 까치 발행·472쪽·1만9,800원

공황장애 경험도 솔직하게 고백한다. 올해 1월 남긴 일기에는 "정말 밥이 모래알 같고 공황장애의 숨 막힘의 고통은 어떤 약으로도 치유할 수 없다" "공황장애, 숨이 턱턱 막힌다. 불안, 공포, 정말 생애 최고의 힘든 시기였다”고 털어놨다.


책에는 일에 대한 애정도 가득하다. 김수미가 30대였던 1986년 일기에서 “목숨을 걸고 녹화하고, 연습하고, 놀고, 참으면 어떤 대가가 있겠지”라고 쓴 대목에선 그의 다부진 모습이 읽힌다. 50대가 된 2004년엔 "어제 녹화도 잘했다. 다시 데뷔하는 마음으로 전력 질주해서 본때를 보여주자"고 의지를 다진다.


책에서 엄마로서의 삶도 엿볼 수 있다. 그는 1986년 일기에서 “화려한 인기보다는 조용한, 평범한 애들 엄마 쪽을 많이 원한다. 적당하게 일하고 아늑한 집에서 자잘한 꽃을 심어놓고 좋은 책들을 읽으며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을 기다리고 싶다”고 소망했다. 2011년엔 “마지막 소원이 있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아니면 1층 담에 나팔꽃 넝쿨을 올리고 살아보고 싶다. 그러면서 글을 쓰고 싶다”고 소박한 꿈을 꿨다.


매일 새벽 일기를 써온 김수미는 생전 수많은 책을 썼다. 에세이집 '그리운 것은 말하지 않겠다'(1987), '나는 가끔 도망가 버리고 싶다'(1993), '미안하다 사랑해서'(1997), '그해 봄 나는 중이 되고 싶었다'(2003)와 소설 '너를 보면 살고 싶다'(1990) 등이 있다. 요리책 '김수미의 전라도 음식 이야기'(1998), '맘 놓고 먹어도 살 안 쪄요'(2003), '김수미의 이유식의 품격'(2021), '김수미의 김치 장아찌'(2022) 등도 출간했다.


한국일보

1980~90년대 인기를 누린 드라마 '전원일기' 속 김수미(맨 오른쪽)의 모습. MBC 제공

1970년 M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김수미는 역대 최장수 TV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일용엄니' 역할을 맡아 큰 인기를 끌었다. 그 후 다양한 작품에서 열연을 펼쳤고, 뛰어난 요리 실력으로 여러 요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유족은 고인의 뜻을 기려 인세를 전액 기부할 예정이다.



김민지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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