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1월이었냐는 듯 2024년의 한 해도 저물어가고 있다. 설렘과 서운함이 뒤섞인 묘한 감정에, 하루하루 기대감과 아쉬움이 번갈아 일어나는 시즌. 같은 마음을 나누고 위로하며, 바쁜 일상으로 자주 보기 힘든 이들과 회포를 풀기 위한 연말 모임이 이어지는 철이기도 하다. 저물어가는 한 해를 돌아보고 즐겁게 마무리하기에, 한자리에 모여 앉아 음식과 술을 나누는 것 만한 것이 있던가. 어디를 둘러봐도 각자 몸담은 조직 단위로, 또는 소수의 가까운 이들과의 연말 모임 준비가 한창이고, 식당 예약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마감되고 있다.

그렇다면 모임을 위한 외식 장르로는 뭐가 좋을까. 전통의 강자 한식도 좋고 푸짐한 이미지로 중식의 인기도 여전하다. 유려하고 깔끔한 인상의 일식의 인기도 좋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연말 모임 음식으로 급부상한 장르를 꼽자면 역시 와인 다이닝을 빼놓을 수 없다.

연말 모임 자리에 분위기를 더하는 와인 고유의 향과 색, 풍미. 와인과 어울리는 음식을 페어링 하여 함께 즐기며 와인과 음식의 남다른 궁합, 마리아주를 향유하는 즐거움까지. 와인 다이닝은 확실히 단순한 식사 경험 이상의 복합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경험을 제공하며, 이러한 특징은 특별하고 기억에 남을 모임을 원하는 니즈와도 깊게 맞닿아 있다. 와인 수요 증가와 함께 와인바 대중화 시대가 열린 이래로 더 새롭고 더 섬세한 면모로 시선을 사로잡는 신흥 와인 다이닝의 등장도 꾸준히 이어졌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중에게는 다소 거리감이 있었던 와인 다이닝이지만 더이상 일상과 동떨어진 장르가 아니게 되었고, 연말 모임에서는 특히나 각광받는 장르가 된 지 오래다.

더불어 하나의 장르로 묶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복합적으로 발전하여, 구체적으로 취향에 맞는 선택지를 찾아가는 재미도 크다. 과거 와인바라면 클래식한 양식 스타일 일변도였다면 중식, 일식은 물론 한식에 에스닉 터치를 곁들여 스스로를 차별화한 업장도 여럿 합류한 상태다. 전례 없이 다양한 와인 다이닝 업장들이 탄탄한 조리 실력에 기반한 다양한 디쉬와 업장만의 스타일을 담은 이색적인 페어링 제안으로, 식사 자리를 미식의 장으로 만들며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오늘 소개할 업장들도 이 분야의 강자들. 와인 다이닝다운 뛰어난 맛과 와인 선별 역량에 부가적인 여러 차별화된 장점까지 확보하여, 기꺼이 방문해 경험해 볼 가치가 있는 와인 다이닝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다가오는 연말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줄, 와인 다이닝 신흥강자 다섯 곳을 소개한다.

1. 와인으로 하나 된 양식과 일식, 압구정 ‘르베미’

공식 네이버플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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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종이 넘는 구성의 주류 리스트로 와인바의 본질에 충실하면서, 합리적인 가격의 디쉬들도 수준급으로 맛있는 다이닝 바. 5성급 호텔에서 각각 양식, 일식 셰프로 활약한 두 헤드 셰프가 다양한 콜라보 디쉬를 와인에 어울리는 스타일로 선보인다. 두 장르가 만난 업장인 만큼 양식 요리, 양식 터치를 적절히 입혀낸 일식 요리, 친숙한 일식 요리까지 메뉴 선택의 폭도 넓어, 와인과 음식 취향에 맞춰 다채롭게 페어링을 시도할 수 있는 점도 좋다. 파스타 메뉴는 아예 퍼스널 파스타라는 이름의, 모든 고객이 취향에 따라 주문할 수 있는 맞춤 메뉴로 배치한 센스와 배려도 돋보인다. 오픈 키친을 둘러싼 형태로 큼직하게 펼쳐진 바 좌석부터, 룸도 두 가지 타입으로 마련되어 있고 별도 차지 없이 이용 가능하다. 언제 누구와 방문해도 가장 선호하는 형태로 페어링을 즐길 수 있는 압구정 로데오 다이닝 바.

▲위치: 서울 강남구 선릉로157길 33 

▲영업시간: 17:00 - 24:00, 월요일·화요일 휴무  

▲가격: 랍스터 플래터 12만8000원, 통삼겹 브륄레 4만3000원  

▲후기(식신 미니언덕후):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와인바. 가운데 바테이블에서 음식 만들어지는 걸 보는 걸 좋아해서 오픈 키친을 선호함. 메뉴가 다양한데 육류도 해산물류도 모두 훌륭. 일본식 터치가 들어간 메뉴들이 많아요

2. 한남동 속 부르고뉴 와이너리, 한남 ‘부르고뉴 한남’

인플루언서 먹우영 제공

인플루언서 먹우영 제공

실제 와이너리의 특색을 그대로 정밀하게 연출하고 구현한 공간이 매력적인 와인바. 부르고뉴 한남만이 선사하는 독보적인 경험은, 2층에 위치한 업장으로 올라가기 위해 와이너리의 까브로 들어서듯 계단을 오르는 시점부터 시작된다. 입구를 통과해 오크 통을 사용해 진열된 500여 종의 와인을 마주하며 경험은 고조되고, 최종적으로 아늑하고 고급스럽게 꾸며진 다이닝 공간에 이르러 절정에 달한다. 부르고뉴 지역의 와이너리 투어에 초대받은 듯 행복한 상상에 빠져들게 하며, 와인과 음식의 마리아주를 만끽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별도의 룸 차지와 최소 인원 제한 규정이 없어 부담스럽지 않게 원하는 테이블이나 룸을 예약하고 모임 장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아늑하고 차별화된 분위기에서 기억에 남을 특별한 와인 다이닝 경험을 하고 싶은 날 들러봄직하다.

▲위치: 서울 용산구 독서당로 81-1 2층 

▲영업시간: 매일 17:00 - 01:00, 주말은 15시부터 

▲가격: 순종와규 부채살 페퍼크림프라이즈 7만8000원, 장발장깜빠뉴·레몬버터 9000원 

▲후기(식신 모던보이): 입구부터 압살하는 분위기. 와인리스트가 엄청난데 소믈리에분이 추천을 잘 해주셔서 좋았습니다. 기념일에 오붓하게 분위기 내고 싶을 때 추천하는 곳

3. 프랑스 현지 이상의 와인앤다인, 청담 ‘살롱뒤부케’

salon_du_bouquet님의 인스타그램(공식)

salon_du_bouquet님의 인스타그램(공식)

한국 양식 다이닝의 역사를 얘기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두 업장, 팔레드고몽과 뚜또베네의 소믈리에였던 김진석 소믈리에와 프렌치 명가 오프레 소믈리에 출신 박우리나라 소믈리에의 만남으로 오픈 전부터 화제였던 와인바. 김진석 소믈리에가 컨셉부터 타일, 샹들리에, 소품, 식기, 그릇 등의 디테일한 요소들까지 직접 하나하나 공수하고 디렉팅 하여 완성한 공간부터 황금시대 파리의 사교 살롱을 그대로 재현한 듯 독보적인 분위기를 자랑한다. 경력으로나 실력으로나 최고의 소믈리에 2인이 힘을 모은 만큼 와인 핸들링과 서빙, 리스트업에 있어서도 일반적인 와인바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다. 와인과의 조합을 고려해 섬세하게 설계된 클래식한 디쉬들의 수준도 높은 편. 해외에서의 경험이 부럽지 않은, 압도적인 와인 경험을 선사하는 공간으로 1순위에 둘 만하다.

▲위치: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81길 16-6 

▲영업시간: 매일 18:00 - 02:00 

▲가격: 프랑스식 양파수프 1인 9000원, 카비아리 트랜스몬타누스 캐비아를 올린 가리비관자 타르타르와 으깬 감자·가리비 관자 크림소스 6만9000원 

▲후기(식신 빵쪼아용): 훌륭한 와인과 음식이 있는 곳. 엔틱한 인테리어와 식기류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서비스도 친절 세심하세요.

4. 포르투갈 와인 다이닝의 모든 것, 경리단길 ‘남산와이너리’

공식 네이버플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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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구석 매력이 가득한 경리단길 골목 초입에 자리한 포르투갈 와인 전문 다이닝 바. 단순히 컨셉이 아닌 업장 정체성이자 방향성으로 포르투갈을 내세운 만큼 와인 리스트부터 음식까지 전부 포르투갈의 색깔이 듬뿍 배어 있다. 포르투갈 와인 중심의 탄탄한 와인 리스트를 바탕으로 주류 추천 서비스도 좋은 편이며, 문어밥, 바칼라우 파스타 등의 현지 특색을 잘 살려낸 디쉬들은 짭조름한 맛에 이국적인 풍미로 와인과 한 몸처럼 잘 어울린다. 2층 가정집을 개조한 공간 또한 포르투갈 어느 작은 마을의 가정집처럼 푸근하고 소박한 분위기가 식사와 와인 경험에 편안함을 더한다. 2023년 서울 최고의 탑 15 와인 레스토랑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을 만큼 믿고 방문해도 좋을, 포르투갈의 색깔로 그려낸 와인 다이닝으로 추천한다.

▲위치: 서울 용산구 회나무로10길 5  

▲영업시간: 12:00 - 22:00(B·T 15:00 - 16:30), 월요일 휴무 

▲가격: 포르투갈해물탕 Caldeirada 3만2000원, Polvo a lagareiro (문어스테이크) 3만8000원, 바칼라우파스타 2만6000원 

▲후기(식신 자연미인): 너무나 고급스럽고 프라이빗한 분위기의 맛집. 지하층은 마치 와인 케이브 안에서 먹는 것 같은 느낌이라 더 새로워요. 요리들 가격도 합리적이라 좋습니다.

5. 와인 애호가들의 사랑방, 버티고개 ‘어라우즈’

arouz_seoul님의 인스타그램(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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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이자 푸드라이터로서 활동하고 있는 장준우 셰프의 와인바. 그날그날 지중해 음식, 스페인 음식 베이스의 타파스 오마카세를 주문하고 셰프의 추천을 받아 엄선된 와인 리스트에서 와인까지 고르고 나면 편안한 와인 타임이 시작되는 시스템. 아담한 공간에 걸맞은 편안하고 부담 없는 음식은 수수할 뿐 가볍지 않다. 전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공수한 재료를 사용해 셰프만의 스타일로 와인과의 조화를 우선적으로 고려해 정성껏 준비된다. 그대로 먹어도 좋지만 이상적인 추천을 거쳐 와인과 만난 순간 완벽한 마리아주는 완성되고, 간단한 식사는 미식의 영역에 들어선다. 찾아가기 다소 험난한 위치가 유일한 흠이나 일단 도착하면 은밀한 스피크이지바와 수더분한 동네 사랑방을 합친 느낌의 위치가 뿜어내는 매력에 그조차도 만족스럽게 다가올 것이라 자부한다.

▲위치: 서울 중구 다산로 32 상가6동 103-1호 

▲영업시간: 18:00 - 23:00, 일요일·월요일 휴무 

▲가격: 타파스 오마카세 5만원 

▲후기(식신 빠빠몬): 분위기 아늑하고 좋고 와인도 맛있는 아지트 같은 공간. 이탈리안 터치의 스페인 타파스들이 종류도 많고 맛도 좋아요. 파스타와 혼술을 노려보아도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