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때리면 같이 때려” ‘계엄’ 김선생 몰아낸 시골초교...‘깜짝 실험’
담임이 정한 법에 당황한 학생들…스스로 법 만들어 선생님 몰아내. "아이들도 억압에 어른과 같이 항거해…작은 시민이라고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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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사태가 국회 표결로 막을 내린 지난 4일 오전, 강원지역 작은 초등학교의 2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김모 교사가 학생들을 상대로 ‘계엄령’을 실시했다.
이날 김 교사는 한 아이가 “선생님 A가 B를 때렸어요”라고 말하는 것을 본 뒤, 머릿속에 ‘번뜩’하고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자신이 계엄령을 내려 아이들에게 부당함을 직접 느껴보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김 교사는 아이들에게 “안 되겠다. 지금부터 김선생님법을 만들 거야. ‘김선생님법 1호, 친구가 때리면 같이 때린다’ 모두 이 법을 지켜야 하고, 안 지키면 처단당할 거야”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 |
교실 분위기가 순간 푹 가라앉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은 다시 시끄럽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김 교사는 이에 “친구 때린 사람 목소리를 들으니까 기분 나빠. 김선생님법 2호. 친구를 때린 사람은 1시간 동안 말을 하지 못한다. 안 지키면 내가 처단할 거야”라고 다시금 선포했다.
그때였다. 아이들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감지한 뒤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단이 뭐냐고 묻는 한 아이의 질문에 다른 친구가 “학교에서 쫓아내는 것”이라고 답하자 교실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 정족수 미달로 폐기된 7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연합] |
김 교사는 평소와 같은 학급 생활을 보내던 아이들이 김선생님법 앞에 숙연해진 모습을 보며 6호까지 계엄령을 늘어놨다. ‘친구를 때린 사람은 급식을 꼴찌로 먹는다’, ‘수업 준비를 제대로 안 하면 자치 모임에 참여할 수 없다’, ‘거짓말을 하면 점심 놀이 시간 없이 교실에 와서 수업받는다’ 등이다.
이후 이 법에 따라 2학년 학생들이 자치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것을 알게된 6학년 학생들이 김 선생을 찾아 항의했다. 이들은 “선생님이 아이들을 모임에 못 가게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얘기했다. 이들은 미리 김 교사와 작전을 짜고, 그를 몰아내기 위해 교실에 온 것.
6학년 학생들이 “김선생님을 몰아내자”라고 구호를 외쳤지만, 2학년 아이들은 쭈뼛쭈뼛 머뭇거렸다. 그러나 6학년 학생들이 다시 한번 “김선생님을 몰아내자”라고 더 크게 외치자 2학년 학생들도 뒤를 따랐다.
2학년 어린이들은 이후 ‘우리반법’을 함께 만들어 김선생님법을 무효화 했다. 흰 종이 위에는 우리반법의 3개 조항이 비뚠 글씨로 적혔다.
① 김선생님법을 만들 수 없다. ② 선생님은 바보다. ③ 선생님은 우리에게 맜(맞)아야 한다.
강원지역 모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만든 ‘우리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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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사는 10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아이들이 작아도 (부당한 억압에 대해) 어른과 똑같은 반응을 보인다”며 “‘얘들이 뭘 알 수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번 일을 통해 어린이 역시 작은 시민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은 평소 그래왔듯 놀이를 한 것이지 누굴 때리거나 싸운 것은 아니었다”며 “김선생님법이 교실에서 사라지고 교사와 학생들은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일상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유진 기자